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제의 이름을 잇다/등장인물 (문단 편집) === [[이세적]] === 빈틈없이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 정통파 장군으로 당 제국 최고의 원로. 3차 고당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있었으나 상상을 뛰어넘는 부여풍의 활약으로 많은 정병들을 잃고 겨우 후퇴하던 도중에 병사한다. 원래 3차 고당전쟁이 끝난 바로 다음해에 노환으로 사망한 것을 고려한다면 가뜩이나 고령인데다 충격적인 패배로 인한 충격이 겹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부여풍을 죽이려고 계필하력과 돌궐기병을 보내고, 실패하자 그를 유인하기 위해 설인귀에게 이미 항복한 부여성을 약탈하라 명하는 등[* 사실 이는 민심이 지나치게 그의 계산대로만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점이 컸다. 항복한 지역을 약탈하면 다른 백성들이 저항하려고 부여풍에게 합류할 가능성도 큰데, 구해주지 않았다고 부여풍을 외면할 것이라는 묘하게 편파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 다만 위협적인 수인 것은 맞다. 안 그래도 군사 수와 질이 당군보다 딸리는 부여풍은 민심이라도 모아야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쨌거나 외국인인 부여풍이 고구려 땅까지 와서 격문까지 돌리며 민심을 모으려 해놓고 부여성 사람들을 외면하면 다른 지역 백성들도 부여풍을 못 믿을 사람으로 여길 공산이 컸다. 부여풍도 작중에서도 외통수라 평한다.] 부여풍과는 그야말로 철천지원수의 관계였다. 그러나 부여풍이 그의 손자 서경업이 원 역사에선 무후 시대에 10만이 넘는 장정들을 끌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되새겨서, 그의 반란을 부추겼을 뿐 아니라 그가 자립하도록 수없이 지원해줬으니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관계. --할아버지는 부여풍 때문에 망했고 손자는 부여풍 덕에 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